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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배우 고 김태정 - 홍콩커넥션 70' 퓨젼액션의 세계

원로배우를 내치는 한류바람 턱도 없는 소리

2017-06-19

꿈을 간직했던 영화배우 고 김태정 金泰正 (당룡 唐龍)
- "미국은 80세까지 연기를 하는데, 원로배우를 내치는 한류바람 턱도 없는 소리"

“Requiescat In Pace” ... the late Mr. Kim, Tae Jung
of blessed glorious memory
꿈을 간직했던 한국 액션영화배우 고(故) 김태정 金泰正 (당룡 唐龍-Tong Lung)

심흥근 기자 (기록물 편집 정리) inchon7080@gmail.com
Jun 19, 2017


배우 김태정 “아가씨 참으세요” 갈무리


한국액션영화인 김태정(당룡 唐龍)선생은, 한물간 영화배우라는 세평을 거부하고, 미국에서 안보방위산업 특수물자 조달사업 계획을 세우고, 현지에서 창출된 자금을 자신이 제작할 영화작품시리즈에 투자를 구상하는 등 한국형액션영화의 재도약을 위한 그의 도전은 “뒤에서 날아온 화살 이라는 피할 수 없는 숙명” 앞에(8월 27일, 2011년 - 의문사) 아쉽게도 의문사로 인생의 막을 내렸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영원한 귀감으로 남을 것이다.

-전설의 액션스타 ‘부르스 리’ 이소룡 사망 44주기 맞아 '이소룡 영화제' 열린다
‘한중문화센터’는 오는 7월 20일 (2017년)에 이소룡 사망 44주기 (1973년 7월20일)를 맞아 7월 한달 동안 서울 송파의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실크로드 중국영화관’에서 이소룡의 대표작들을 상영한다. 전 세계를 열광시킨 이소룡의 흥행작인 '당산대형', '정무문', '맹룡과강', '사망유희', '사망탑' 등을 극장에서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밝힌다.  7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이소룡은 44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팬들이 세계 곳곳에 있다. 특히 노란색 트레이닝 복과 괴성, 그리고 절권도 등의 트레이드 마크는 수많은 영화와 사람들 사이에서 오마쥬, 패러디 될 정도로 아직까지 관심이 지속되고있다. 그러나 액션스타 이소룡은 한국에도 있었다. 부산출신 이소룡은 미국에 교포로서 한동안 생활하며 재기를 꿈꾸어 왔었다. 그 이름은 김태정 ‘당룡’이다.




김태정 “아가씨 참으세요” - 컷, 갈무리


한국보다도 오히려 국제적으로 오히려 팬이 많고 명성이 높은 김태정은 다른 예명으로 (唐龍, Tong Lung)이다. 영화에 첫발을 댄 계기는 〈사망유희〉(1973)를 찍다 급작스레 사망한 이소룡의 대역에 전격 발탁되고서부터이고 이후 정윤희 등 당대의 여배우와 작품을 하는 등 화제가 됐던 추억의 액션배우이다.



영화인의 꿈을 갖고 부산에서 단신으로 서울로 상경, 호떡장사를 하면서 액션배우의 꿈을 가졌고 결국 홍콩에 입성, '당룡'이란 예명으로 〈사망유희〉에 출연한 이후 홍콩에서 원화평과 〈사망탑〉(1981)을 찍었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정윤희와 함께 한 한국영화 〈아가씨 참으세요〉 (1981), 그리고 대만 영화사가 제작비를 대고 한국에서 촬영한 〈쌍배〉 (1981)에 출연했으며 장 끌로드 반담의 〈특명 어벤저〉 (1986)에 출연하며 전세계 액션영화 팬들에게 그 이름이 각인되었다.



“문화는 그 나라의 얼굴이고 축소판이잖아. 지금은 다 알지만 여전히 모자란 거 같고. 제대로 경쟁을 할 수 있으면 정말 한류 바람은 영화에서 또 불 수 있다고. 난 제작자들한테 그런 얘기를 하고 싶어. 왜 자꾸 젊은 배우들만 기용하냐. 일본만 봐도 40-50대 배우가 많고 미국은 80살까지 연기를 한다고. 그럼 우리는 그런 배우가 어디 있느냐고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좋은 연기를 펼칠 수 있는데. 몇 안 되는 배우들 가지고 영화의 한류 바람을 일으킨다, 턱도 없는 소리지” [‘무비스트’ 하성태 기자 인터뷰 발췌인용: “드디어 접선! 이소룡 <사망유희>의 '당룡' 김태정 - 2009년 06월 11일자]



지난 2008년 7월 19일, 제12회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홍콩커넥션 70년대 퓨젼액션의 세계” 라는 주제로 문화계 인사들과 영화관계 전문인 그리고 기자들이 참석하는 세미나가 있었다. 대담은 ‘시네 21” 지 주성철 기자와 김태정 (당룡)과 왕호 그리고 류승환 영화감독이 함께 자리하였다. 김태정은 한류가 만개하는 지구촌 시대를 맞아 좀 더 한국영화의 성숙한 질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유럽이나 헐리웃 거장들의 클라식 영화처럼 삶의 관록이 녹아있는 깊이있는 연기력을 보일 수 있는 원로 영화인 그리고 배우들이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 조성과 인식이 한국영화계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한국의 김태정 (당룡) 이소룡의 미완유작 “사망유희”(死亡遊戱) 를 완성하다.

이소룡의 급사로 인해 그가 기획했던 미완성의 묻혀졌던 필름이 발견되었다. 당시 한국에서 촬영한다는 로케이션 설정 계획을 세웠으나 한국의 추운 겨울날씨로 인해 제작이 연기 되었고 이소룡은 추위에 무척 약했다고 전해진다. 제작진은 일단 먼저 세트 촬영분부터 찍었다. 그 뒤로 여러 우여곡절을 겪다가 결국엔 영화 제작이 중단되었다. 콩코드 프로덕션은 대신 미국의 워너 브라더스와 공동으로 영화 <용쟁호투> (龍爭虎鬪; Enter the Dragon)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이소룡은 영화가 완성되고 개봉을 바로 앞둔 시점에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영화의 공동 제작사 골든 하베스트는 그렇다고 이 영화를 포기할 순 없었다. 이소룡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커다란 상업적 가치가 잠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972년 당시 이소룡이 먼저 찍어 놓았던 분량 이외의 부분에서 이소룡을 대신해 연기할 대역 배우를 대대적으로 공개 모집하기도 하였다. 오디션을 많이 보았지만 적합한 배우를 찾지 못하던 중 한국 동아 흥행 (동아 수출 공사)의 이우석 대표가 당시 무명 배우인 김태정을 데려가 오디션을 보았고, 제작사는 그를 이소룡 대역으로 확정 지었다. 김태정은 "당룡"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였다. 이소룡이 촬영해 놓은 분량이 워낙 적어 어쩔 수 없이 대역이 영화의 90% 가까이 촬영을 해야 했다.



<사망유희> 이 영화의 성공 덕분에 액션 배우로 김태정은 국제적으로 알려지고 이소룡도 하기 어려운 고난도의 태권도 발차기 기술이 일품으로 액션 메니아들에게 아직도 명성이 높은 “사망유희 – 2탄” 인 <사망탑> 작품에 주연으로 출연한다. 그후에는 영화배우 정윤희, 안소영이 참여한 <아가씨 참으세요>에서 공동주연으로 코믹한 재미와 어울어진 멋진 태권도, 십팔기 그리고 쿵푸가 어우러진 그만의 독특한 퓨전액션의 진수를 선보인다. 홍콩계 마피아가 정윤희 아버지의 회사를 가로채려는 음모를 국제경찰 한국지부 인터폴인 김태정이 나서서 해결한다는 권선징악의 내용이었다.



영화 언론지 ‘시네 21’의 주성철 전문기자는 이렇게 평했다, “사실 카리스마와 표정 연기가 떨어질 뿐이지 당룡은 이소룡보다 더 빠른 속도와 난이도 높은 액션을 자랑한다. 사실 이소룡은 스턴트 연기와는 거리가 있기에, <사망유희>에서 당룡이 앞차기로 전구를 깨트리는 장면이나, 점프를 해서 자동차를 뛰어넘는 장면, 쉴새없이 돌려차기를 하는 장면은 이소룡도 따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이 얼굴 없는 배우들의 슬픈 운명이다".

어쨌든 김태정이란 대역의 '몸'을 빌려 이소룡 유작은 완성됐다. '사망유희'에서 이소룡이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은둔한 채 복수를 감행했듯, 김태정은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30여년을 살았다. 이소룡이라는 존재에서 한평생 벗어나지 못했지만 겸손되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김태정은 다시 태어나도 이소룡의 후계자임을 자처했다.

김태정은 탁월한 무술실력에 버금가는 타고난 예능적 끼와 재치가 넘치는 구수한 입담에 게다가 국악인도 울고 갈 구성진 남도창 가락으로 후배들을 경탄케 한 사실은 유명하다.

‘이소룡 탄생 70주년 행사’ 참석차 잠시 방한한 김태정은 “할리우드에서 영어로 촬영할 생각이다. 사망유희, 사망탑에 이은 '사망' 시리즈의 3번째 작품으로 “야쿠자-사망지로”가 내 인생의 마지막 목표다. 이 작품 이후 미련 없이 영화계를 뜰 생각이다”. (인용: “이 남자의 노란색에 그대 아직도 가슴이 뛰나” 조선일보2010.11.27 - 석남준 기자)

‘나무위키’ 백과사전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김태정은 *1956년 6월 5일 부산에서 국악인이었던 김칠성 선생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69년경에 서울로 상경했는데 붕어빵 장사를 하며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1974년에 국내에 처음 수입된 이소룡영화 정무문을 보고 감명받아 이소룡 영화를 수십번씩 돌려보며 그의 표정과 동작들을 따라하며 영화배우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히 이소룡의 유작인 사망유희에서 이소룡을 대신해서 연기할 대역 배우를 찾는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이 당시 심사위원에게 제출할 사진을 찍을 돈조차 없어(...) 일주일간 사진관을 들락거리며 사진사를 설득한 끝에 겨우 겨우 허락을 받아 창덕궁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웃지 못할 일화가 있다고 한다. (참고 * 유골함에는 음력 1957년 6월 5일생으로 되어있다. 이는 과거에는 호적신고를 늦게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평소 그를 눈여겨 보고 있던 이우석 사장의 도움으로 홍콩에 가서 오디션을 봤는데 이 때 심사위원들의 손에 동전을 쥐게 하고 순식간에 손에 쥔 동전을 빼앗는 묘기를 보여서 심사위원들을 놀라게했다. 김태정은 결국 대역에 발탁되게 되고 세계에서 그에게 관심이 쏟아지게 된다. 그렇게 완성된 “사망유희”는 영화 자체로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으나, 이소룡 대역을 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그는 거의 스타로 인식되었고 쇼-브라더스사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을 정도로 성공한 배우가 되었다.

그 후로는 예명을 당룡이라 짓고 사망유희의 속편 “사망탑”에 출연하기도 했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게다가 이소룡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마당에 그가 활동을 범위도 점차 축소되고 있었고 그는 결국 이소룡과 성룡의 대결이라는 황당한 설정의 무협영화 “쌍배”, 정윤희와 연기한 코믹에로액션영화 “아가씨 참으세요” 등 몇편의 영화에만 출연하고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미국에서 무술도장을 세우고 제자를 가르치고 있던 중에 우연히 만난 “사망탑”의 감독 오사원에게 캐스팅되어 커트 맥키니 주연의 B급 액션물 “특명 어벤저”에 출연한 것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그만 두었다. “특명 어벤저”에 출연한 1985년 이후로는 거의 잊혀진 신세가 되었으나 한국의 이소룡 팬들과 교류를 하면서 몇 해 전에는 OBS에서 방영하는 “전설의 시대”에서 그를 다룬 프로그램이 공중파를 타기도 했고, ‘무비스트’와도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야쿠자라는 영화의 제작자 겸 주연배우로 재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해 팬들에게 반가움을 주었다.

차근히 새로운 영화를 준비하던 중 2011년 8월 27일 김태정은 가까운 지인들과의 만남이 있던 자리에서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사망하여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사망원인은 불명이며 계속 조사 중에 있었으나 가족들의 합의로 오봉정사라는 절에 안치되었다. 팬들은 이소룡 월드, 이소룡 포럼 등의 카페에 꾸준히 추모글을 올리고 당룡의 추모카페까지 개설하는 등의 관심을 보였으나 정작 사망과 관련한 인터넷 기사 한 줄 조차 찾을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며. 그를 인터뷰한 ‘무비스트’에서 조차 명확한 사망소식을 알지 못하는 듯 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김태정의 재평가

‘씨네21’에서 그를 대인배로 추억하는 기사를 내보내는 등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홍콩영화에서 악역으로 자주 나온 황정리 선생과도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고 한다. 한물간 영화인이라는 세평을 거부하고, 미국에서 안보방위산업 특수물자 조달사업 계획을 세우고, 현지에서 창출된 자금을 자신이 제작할 영화작품시리즈에 투자를 구상하는 등 한국형 액션영화의 재도약을 위한 그의 도전은 운명 앞에 아쉽게도 막을 내렸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의 영원한 귀감으로 남을 것이다.

[출연작품]
‘사망유희’ Game of Death (1978년, 빌리 로 대역)
‘사망탑’ (1980년, 빌리 로 대역/바비 로 역)
‘아가씨 참으세요’ (1981년, 민욱 역)
‘쌍배’ (1982년, 이소룡 역)
‘특명 어벤저’ (1985년, 이소룡의 유령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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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카페 “무술영화관” 팬카페 멤버 “실버폭스”의 댓글:
(실퍼폭스) 2011/09/02

-“생전 고인과의 약속대로 병원에서부터 장례식까지 쭈욱 곁에 있었는데..황정리선생님,장일도선생님. 왕호선생님, EBS안태근피디님, 기자분들, 각계유명인사분들, 영화감독님등, 많은팬들과 지인분들이 오셔서 명복을 빌어주셨습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셔서 이세상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당룡(김태정)님의 의문의 죽음으로 인해서 발인도 이틀씩이나 연기하면서 부검을 통해 의문사를 밝히려고 했으나 가족들의 합의로 결국 이틀 연기된 날짜에 발인을 했습니다 수원연화장에서 화장을 해서 의왕시에 있는 오봉정사절 안에 있는 납골당에 모셨습니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가끔 찾아 가서 고인의 명복을 빌어 주시면 고인도 외롭지 않을 거예요!!”

납골당위치: 경기도 의왕시 고천동 191-8번지(오봉정사절)
Tel: 031-452-4814/031-451-0653



어느 유럽팬의 조사:
R.I.P Kim Tai-Jung / 김태정

-MG Lerox (Bosnia & Herzegovina)
Today at 12:10 pm I received massage from one Korean friend that Korean martial art star and one of my favorite movie stars of all times, Kim Tai-Jung passed away. He will stay remembered to many fans for his work on Bruce Lee's unfinished project "Game of Death" and it's sequel "Tower of Death". Even if he never made many movies, he marked Kung Fu movies world forever. This is really hard time for me as for one of his biggest fans. Kim Tai-Jung will forever stay in our hearts as one of the brightest and most talented Korean martial art movie stars of all times, may God bless him.



*영상자료:
[유튜브 인터뷰 동영상] Kim Tai Jung 김태정
- 부천판타스틱영화제-홍콩커넥션 70' 퓨젼액션의 세계 1 편 2편

[전설의 시대 OBS - 당룡 김태정]
https://youtu.be/4dqOvHzvmC0

[부천판타스틱영화제-김태정]
https://youtu.be/7-5BGnfH06c

https://youtu.be/zgE1_h_W7Mg

Bruce Lee: Game of Death - Bruce Lee (김태정) vs Carl M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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