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돈> 요지
플라톤 지음, 박종현 엮어 옮김/서광사
I. 대화에 들어가기에 앞서 (57a~61c)
1. 소크라테스와의 담화 내용을 소개 하기에 앞선 첫머리 대화 (57- 59e)
2. 감옥으로 소크라테스를 찾아간 친구와 제자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눔 (59c~61c)
ll. 죽음과 관련된 논의 (61c~69e)
1. 자살에 대해 논의함 (61c~62e)
2. 철학자(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와 죽음 (63a~69e)
1) 죽음이 몸에서 혼이 벗어나는 것인 한, 그리고 철학자가 몸에서 자유로워 지고자 하는 한, 그는 죽음을 추구해 온 것임을 환기시킴 (64a~e)
2) 혼 자체만으로 얻게 되는 지혜와 참된 훌륭함(덕): 혼의 순수화: 사후의 문제와 관련된 낙관적 희망 (65a~69e)
III. 혼의 불멸성에 대한 논의 (69e ~ 107b)
1. 케베스가 혼의 불멸성이 증명되어야 하는 이유를 말함 (69e ~ 70c)
2. 혼의 불멸성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첫번째 논변 (70c~77d)
1) 대립되는 것들은 대립되는 것들에서 생긴다는 원리 또는 윤회 설에 입각 한 논변 (70c~72e)
2) 상기설 에 입각한 논변: 배움은 상기함이며, 그 앎의 대상들은 '아름다움 자체' 나 '좋음 자체'와 같은 형상 들이다 (72e~77a)
3)시미아스와 케베스는 이를 반쪽의 논증이라 하며 나머지 논증까지 요구함: 태어나기 전의 혼이 있었다고 해서 사후에도 그것이 있다는 게 논증되는 것은 아니라며 (77b~78a)
3. 혼의 불멸성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두 번째 논변: 닮음, 유사성에 의한 논증 (78b~84b): 있는 것들의 두 종류 중에서 형상을 닮은 혼은 죽지않는 것임을 말함.
4. 두 번째 논변에 대한 시미아스와 케베스의 의문제기 (84d~88b)
1) 시미아스의 의문 제기: 조율된 조화 현상에 빗댄 혼 (85b~86d)
2) 케베스의 의문 제기: 여러 차례 거듭나더라도, 마지막 몸보다는 오래가지 못할 지 모르는 혼 (86e~88b)
5. 막간 (88c~91c)
6. 시미아스의 의문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대답 (91c~95a)
7.케베스의 의문 (95b~96a)
1) 그 요지의 재정리: 혼은 전적으로 죽지 않으며 파괴 될 수 없는 것임을 증명해 달라는 요구 (95b~c)
2) 케베스의 요구는 결국 사물들의 생성과 소멸 전반에 관련된 원인구명을 요구하는 것이 됨 (95e~96a)
8. 캐베스의 요구가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자연 탐구와 관련된 자신의 편력과 자신이 택한 차선의 방법에 대해서 말하게 함 (95e~102a)
9. 혼의 불멸성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논변: 형상 이론에 입각해 논변을 함 (102a~107b)
IV. 신화: 전승 또는 참된 지구에 대한 이야기 (107c~115a)
V. 소크라테스의 최후 장면과 그의 죽음 (115a~118a)
해제
이 대화편은 일흔의 소크라테스가 한 달 동안의 감옥살이 끝에 마침내 독약을 마시기로 되어있는 마지막 날을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려 주는 사람은 파이돈이며, 그는 아테네에서 고향 엘리스로 돌아가던 중에 코린토스에서 가까운 플리우스에 들렀다가 그곳 사람으로서 그 날의 일에 대해 몹시 궁금해하는 에케크라테스한테 그 날 감옥에서 있었던 일들과 담론 내용을 들려 준다. 이런 사건들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이 대화편은, 머리말에서도 간단히 언급했듯 분명히 앞의 세 대화편에 바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흔히 하는 플라톤의 대화편 들에 대한 시기 구분(초기·중기·후기)에 따르면, 앞의 셋은 초기에 속하는 것들이지만 이 대화편만은 여기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철학적인 내용에 따라 분명히 중기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된다. 초기 대화편들이란 그가 28세였던 399년에 소크라테스가 처형된 후 열두 해쯤 지난 40세 무렵에 이탈리아 및 시켈리아(시칠리아) 여행을 하게 되기까지의 시기의 것 들이다. 이 여행에서 돌아와 42·3세쯤 (385년경)에 이후의 그의 학문활동의 중심이 되는 아카데미아(Akademeia) 학원을 수립하게 되는 무렵부터 60세 무렵까지의 시기에 저술된 저술된 대화편들이 이른바 중기 대화편들로 분류된다. 그러니까 이 대화편은 이 시기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파피루스로 만들어진 두루마리 형태로 세상에 나와 읽히기 시작한 정확한 시기를 알지 못한다. 다만 그 내용상 초기와 중기를 연결하는 성격을 갖는 대화편인 《메논》편 보다는 뒤에, 《국가》편보다는 앞서 저술된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해도 될 일 이다. 역시 중기의 것 인 《연회(향연)》편과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것이라는 정도도 말할 수 있는 일이다. 어쨌든 399년에 소크라테스가 죽은 지 15년 안팎의 세월이 지난 뒤에야 사람들은 이 대화편에 접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 날 소크라테스를 감옥으로 찾아간 소싯적부터의 친구 크리 톤을 비롯하여 많은 제자와 함께 그가 가진 담론 내용들도 학문적으로 흥미롭고 중요하지만 인류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한 성현, 일생을 지혜에 대한 사랑(철학)으로 일관하며 남들도 그렇게 하게끔 극성스럽도록 권유하다가 어처구니없게도 처형까지 당하는 한 철인의 최후의 모습이 참으로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는 것도 이 대화편의 작품적 가치를 드높게 하는 것이다.
63c "시미아스 그리고 케베스! 내가 만약에 첫째로 지혜로우며 훌륭한 다른 신들 곁으로 그 다음으로는 이미 죽었으되 이 세상 사람들보다도 더 훌륭한 인간들 곁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면, 죽음에 대해 성을 내지 않음으로써 나는 잘못하고 있는 것일 게야. 하지만 이제 잘들 알아두게나. 내가 훌륭한 사람들 곁으로 가게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는 걸 말 일세. 비록 이를 아주 자신있게 주장 하고자 하는 건 아니긴 하지만 그렇지만 아주 훌륭한 주인들인 신들 곁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것은 혹시 이런 것들 가운데서 자신 있게 주장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야말로 자신 있게 주장 할 수 있는 것임을 잘들 알아 두게 나. 이런 까닭으로 나는 그만큼 성을 내지도 않고, 오히려 죽는 사람들에게는 무엇 인가가 있을 것이라는, 그것도 오랜 동안 전해 오듯, 선량한 사람들에서는 나쁜 사람들의 경우보다는 훨씬 더 좋은 것이 있을 것이라는 데 대해 나는 낙관적인 희망을 갖고 있네."
64a "철학(지혜에 대한 사랑)에 옳게 종사하여 온 사람들은 모두가 다름 아닌 죽는 것과 죽음을 스스로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실은 모르고 있는 것 같으이. 그러니, 만일 이것이 진실이라면, 온 생애를 통하여 다름 아닌 그것을 열망 해 오다가, 오래도록 스스로 열망도하며 추구하여 오기도 하던 것이 막상 자기에게 닥쳐 왔을 때는 성을 낸다는 것은 확실히 이상한 짓일 것이네."
64c "그들은 참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떤 점에서 죽기를 바라는지 그리고 어떤 점에서 죽음에 대해 자격이 있고 또 그것이 어떤 종류의 죽음인지는 모르고 있기 때문이네. 그들은 내버려두고 우리끼리 말해 보세나. 우리는 죽음(thanatos)이란 것이 있는(무엇인가인) 것으로 믿고 있는가?" 그분께서 물으셨습니다. "물론입니다" 시미아스가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혼이 몸에서 벗어남(apallage)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는 게지? 그리고 이것이 죽음(tethnanai)이라고, 즉 몸(soma)은 몸대로 혼에서 떨어져 나와 그것 자체로만 있게 되고, 혼(psuche)은 혼대로 몸에서 떨어져 나와 그것 자체로만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게지? 죽음이란 이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겠지?" "아닙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여보게, 생각해 보게나. 과연 자네 생각이 내 생각과 같은지 말일세.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고찰하고 있는 것들에 관해서 더 알게 될 것이라고 내가 생각하기 대문이네. 자네가 보기에는 이른바 즐거움(쾌락)들이라고 하는 것들, 이를테면 먹을 것들이나 마실 것들과 같은 것들과 관련된 즐거움들에 대해 갈망하는 것이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일 것 같은가?"
64e "그러니까 대체로 자네에겐 그런 사람의 관심은 몸에 대한 것이 아니고 가능한 한 몸에서 멀리 떨어지 되, 혼으로 향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가?" 그분께서 물으셨습니다. "제게는 그렇게 생각 됩니다." "그렇다면 맨 먼저 이런 것들을 통해서 볼 진대, 지혜를 사랑하는 이(철학자)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혼으로 하여금 몸과의 결합 상태(koinōnia)에서 최대한 벗어나게 하는 사람임이 분명하겠지?" "그런 것 같습니다." "또한 시미아스여! 아마도 많은 사람에게는 이런 것들에 대한 아무 즐거움도 없고 이것들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도 않는 사람은 살 가치가 없거니와 몸을 통한 즐거움(쾌락)들에 대해 전혀 마음 쓰지 않는 사람은 죽음에 상당히 가까이 다가가 있는 것으로 여겨질 걸세."
65c "하지만 적어도 혼이 가장 훌륭하게 추론을 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이것들 중의 어떤 것도 즉 청각도 시각도 또는 어떤 고통이나 즐거움도 혼의 주의를 돌려 놓으며 괴롭히는 일이 없고 혼이 몸과 결별하여 최대한으로 그 자체로만 있게 되며, 혼이 가능한 한 몸과 관계 하지도 접촉하지도 않는 상태에서 존재 하는 것(진실: to on)에 이르고 자 하는 그때 일 걸세."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 경우에도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철학자)의 혼은 몸을 최대한 무시하고서, 이에서 달아나 그 자체로만 있게 되는 걸 추구 하지 않겠는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면 시미아스, 이런 것들은 어떤가? 우리는 올바른 무엇인가(ti dikaion)가 그 자체로(auto) 있다고 말하는가, 아니면 전혀 없다고 말하는가?" "물론 단연코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무언인가(kalon ti)와 좋은 무엇인가가 또한?" "어찌 없다고 하겠습니까?"
66d "재물의 소유 때문에 모든 전쟁이 일어나지만 우리가 재물을 소유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은 몸으로 인해서이니, 우리는 몸의 보살핌을 위해 그 종 노릇을 하고 있는 게야. 몸으로 인한 이 모든 것 때문에 우리는 철학(지혜 에 대한 사랑)과 관련해서 여가 부족의 상태로 지내게 되지. 그러나 무엇보다도 고약한 것은 어쩌다가 우리에게 몸의 보살핌에서 벗어나 여가라도 생겨서 무언가를 고찰해 보려 들기라도 하면, 이번에는 몸이 우리의 탐구 과정 도처에서 끼어 들어서는 소란과 혼란을 일으키며 얼빠지게 만들어, 몸으로 인해서 참된 것(talēthes)을 볼 수 없게 되고 말지. 하지만 실은 우리에게 있어서 다음과 같은 점이 밝혀졌어. 우리가 언제고 뭔가를 순수하게 알려고 한다면, 우리는 몸에서 해방되어야만 하며 사물들을 그 자체로 혼 자체에 의해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지. 그리고 우리가 열망 하는 바의 것이며 또 사람하는 사람들인 바 의 것 인 지혜(phronesis)는, 이 논의가 보여주듯, 우리가 죽게 되었을 그때에야, 우리의 것이 되지. 살아있는 동안은 아닌 것 같아. 만일에 몸과 함께는 아무것도 순수하게 알 수가 없다면, 다음 둘 중의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지. 전혀 앎(to eidenai)을 얻을 수 없거나 아니면 죽어서나 가능하거나. 그때에야 혼은 몸과 떨어져 그 자체로만 있게 되지. 그 이전에는 결코 그렇게 되지 못하니까. 또한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이런 식으로나 앎에 가장 가까이 있게 될 것 같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되도록 몸과는 전혀 같이 지내지도 함께 하지도 말며, 몸의 본성으로 영향을 받는 일도 없게 하되, 신이 몸소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때까지는, 우리가 자신을 몸에서 순수한 상태로 유지할 때에나 말이지. 그리고 우리가 이처럼 몸의 어리석음에서 해방되어 순수해짐으로써, 그런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있게도 될 것 같거니와, 우리 자신을 통해서 일체의 순수한 것도 알게 될 것이니, 이것이 어쩌면 참된 것일 게야. 순수하지 못한 이에게 순수한 것이 포착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을일일 테니까."
69c "참된 것은 사실상 이런 것들 모두의 정화된(순수화된) 형태의 것(katharsistis)이 아닐까, 절제도 올바름도 용기도 그리고 지혜조차도 일종의 정화(순수화: katharmos tis)가 아닐까 싶으이. 그리고 우리에게 입교 의식(入敎儀式: teletai)을 확립해 준 이들 또한 평범한 사람들이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실은 그들이 오래도록 이런 말을 수수께끼처럼 해 왔던 것 같으이. 입교하지도 못하고(amvētos) 입교의식을 치르지도 못한(atelestos) 채로 저승(지하 세계, 하데스)에 이르는 이는 수렁에 놓이게 되지만 정화되고 입교 의식을 치르고서 거기에 이르는 이는 신들과 함께 살게 될 것이라고 말일 세. 실은 입교 의식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말하듯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자들은 많으나 진정한 신도들은 적기' 때문일세. 한데, 내 판단으로는 이들이 다른 사람들 아닌 제대로 지혜를 사랑했던(철학을 했던) 사람들 일세. 바로 이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나 또한 되고자 내 생을 통해서, 적어도 가능한 한은, 아니 하고 남겨둔 것 없이 모든 방식으로 심혈을 기울였네."
70e "모든 동물과 식물과 관련해서도, 그리고 요컨대 출생(생성, 생김: genesis)을 갖는 모든 것과 관련해서, 그러니까 모든 것이 이런 식으로 생기는 것인지 보세나. 즉, 대립되는 것들(ta enantia)은 대립되는 것들 이외의 다른 어떤 것에서도 생기지 않는 것인지 말일세. 그런 어떤 것이 있는 모든 것에는 말일세. 이를테면,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에 그리고 올바른 것은 올바르지 못한 것에 대립되겠고, 그 밖에 수없이 많은 다른 것도 이러하겠다. 따라서 이를 생각해 보기로 하세. 그리고 대립되는 어떤 것이 있는 모든 것의 경우에는, 이것이 이것에 대립되는 것 이외의 다른 어떤 것에서도 생기지 않는 것이 필연적인지 말일세, 이를테면, 어떤 것이 더 커질 때, 그것은 이전에는 한결 작은 것이었던 것에서 나중에 한결 큰 것으로 된 게 필연 적이겠지?"
71e "하면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지? 우리가 대립되는 생김(생성, 됨)으로 평형을 이루게 하지 않아, 이 점에서 자연(physis)이 절름발이이게 할 것인가? 아니면 죽어가고 있음에 대립되는 어떤 생김(생성, 됨)을 제시해 마땅한가?" 그분께서 물으셨습니다. "전적으로 그래야 할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가 대답 했습니다. "그건 무엇 인가?" "소생하고 있음입니다." "그러니까, 소생하고 있음이 정녕 있다면, 이것, 즉 소생하고 있은 죽은 자들에서 산 자들로의 생성이 아니 겠는가?" 그분께서 물으셨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해서도 산 자들에서 죽은 자들이 생기는 것 못지 않게 죽은 자들에서 산 자들이 생긴다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합의를 보게 되었는데, 이게 이러 하다면, 죽은 자들의 혼들은 어딘가에 있는 게 필연적이어서, 이에서 다시 태어난다는데 대한 충분한 증거가 되는 것 같다고 생각되는구먼."
73c "그렇다면 우리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앎(지식: episteme)이 생길 때는 이는 상기함이라는 이 점에 대해 동의하고 있는 건가? 어떤 방식을 두고 말하는 거냐고? 그건 이런 방식일세. 만약에 어떤 사람이 어떤 것을 보거나 듣거나 또는 다른 어떤 감각적 지각(aisthēsis)을 갖게 되어, 그가 비단 그것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앎 의 대상이 아닌 다른 앎의 대상인 다른 것을 또한 생각하게 된다면, 그가 그것에 대한 생각(ennoia)을 갖게 된 그 대상을 그는 상기하게 된 것이라고 우리가 말하는 것은 옳지 않겠는가?"
74d "그렇다면, 누군가가 뭔가를 보고서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할 경우에, 즉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것이 다른 어떤 것과 같은 그런 것으로 되려고 하지만, 그것과 같은 그런 것으로 되기에는 부족하기도 하고 또한 될 수도 없거니와 훨씬 하찮은 것이라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경우에, 그런 생각을 하게된 사람은 이것이 닮기는 했으되(proscoikenai ) 훨씬 모자란다고 그가 대비하여 말하고 있는 그 대상을 먼저 알고 있었을 것임이 어쩌면 필연적일 거라는데 대해 우리는 동의 하고 있는가?" "그야 필연적 입니다." "그러면 어떤가? 그와 같은 일은 우리 또한 같은 것들(ta isa)과 같음 자체 (auto to ison)와 관련해서도 겪었을(경험 했을) 게야, 아니면 그러지 못했을까?" "그건 전적으로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처음에 같은 것들을 보고서, 이것들 모두가(ro ison)과 같은 그런 것으로 되려고 하지만 훨씬 모자란다는 생각을 하게 된 때의 그 시간보다는 이전에 우리가 같음을 먼저 알고 있는(proeidenai) 게 필연적 일세."
75d "그리고 우리가 그 앎들을 일단 갖게 되고서는 그때마다 잊는 일이 없다면, 우리는 언제나 알고 있는 상태로 태어나 일생을 통해 늘 알고 있을 게 또한 필연적일세. 알고 있다(eidenai )는 것은 어떤 것에 대한 앎(지식: episteme)을 갖게 되고서는 이를 잃지 않고 지니고 있는 것일 테니까. 시미아스, 혹여 우리가 이걸, 즉 앎(지식)의 잃어버림을
망각(lēthē)이라 말하지 않기라도 하는가?"
75e "그러나 어쨌든 내가 생각하기로는, 만약에,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 갖게 되었다가 태어나면서 잃어버렸지만, 나중에 이것들과 관련해서 감각적 지각들을 이용하게 됨으로써 언젠가 이전에 우리가 갖고 있던 그 앎(지식)들을 도로 갖게 된다면, 우리가 배우는 것(manthanein)이라 일컫는 것은 자신의 것인 앎(지식)(oikeia epistēmē)을 되찾아 갖게 되는 것(analambanein)이 아니겠는가 싶은데? 이걸 우리가 상기하게 되는 것이라 말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옳게 말하는 거겠지?" "그야 물론입니다." "누군가가 보거나 듣거나 또는 다른 어떤 감각적 지각(aisthēsis)을 갖게 됨으로써 무엇인가를 지각하게 되면, 이로 해서 그가 잊고 있던 다른 무엇인가를 생각해 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 점이 실은 밝혀졌기 때문이네. 이것이 관련되는 그것과 는 닮은(유사한) 것이 아닐 수도 있고 또는 닮은(유사한) 것일 수도 있네. 그러므로 내가 말하듯, 다음 둘 중의 어느 하나일세. 우리 모두가 이것들을 어쨌든 알고 있는 상태로 태어나 일생을 통해 알고 있거나, 또는 우리가 배우는 걸로 말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상기를 하게 될 뿐 다른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배움(mathesis)은 상기함(anamnesis)이거나 말 일세."
82a "그렇다면 이들 중에서도 가장 행복한 자들은 그리고 가장 좋은 곳으로 가는 자들은 평민적이고 시민적인 훌륭함(hē dēmotikē kai politikē aretē) 을 닦은 이들이 아니겠는가? 바로 이것을 사람들이 절제(건전한 마음 상태: sophrosynē) 및 올바름(정의: dikaiosynē)이라 일컫는 데, 이는 철학이나 지성(nous)을 거치지 않은 채 습관(ethos)과 단련(수련:meletē)을 통해서 생기는 것이네만" 그분께서 물으셨습니다. "어떻기에 이들이 가장 행복한가요?" "이들은 그와 같은 시민적이고 유순한 부류로 되돌아갈 것 같기 때문일세. 어쩌면 꿀벌들이나 말벌들 또는 개미들의 종족으로, 아니 그 뿐만 아니라 같은 인간의 종족으로 다시 돌아가 이들에게서 절도 있는 사람들 (andres metrioi)이 또한 생기게 될 것 같기 때문일세" "그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혜를 사랑하지도 않고 완전히 깨끗하지도 못한 상태로 떠나는 자가 신들의 종족한테로 간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을 것이니, [이는] 앎을 사랑하는 자에게만 가당한 일일 것이네."
84e "저런, 시미아스! 내가 현재의 내 운명을 불운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납득 시키기는 아마도 어려울 것 같으이. 자네들한테조차도 그걸 납득 시킬 수 없는 터에 말 일세. 하지만 자네들은 내가 지난날의 생애에서 보다도 지금 다소 더 심기가 불편한 상태에 있지 않나 하고 걱정하고 있네. 또한 자네들한테는 내가 예언의능력(mantikē)에 있어서 백조들보다도 더 보잘것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 같구먼. 백조(kyknos)들은 자기들이 죽어야만 함을 감지하게 되면, 이전에도 노래를 했지만 이때야말로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아름답게 노래를 하는데, 자기들이 그 종들인 신 곁으로 떠나갈 예정이라는 것을 기뻐해서라네. 하지만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자신들의 두려움으로 해서 백조들에 대해 거짓으로 말하는데, 그들은 말하기를 이 것들이 죽음을 비탄하며 슬픔으로 인해서 이들의 마지막 노래를 하는 것이라 하네. 또한 그들은 그 어떤 새도 배고프거나 추워할 때에 또는 다른 어떤 고통으로 괴로워 할 때에 노래하지는 않는다는데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있네. 괴로움으로 해서 비탄하는 노래를 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바로 그 나이팅게일조차도 제비도 후투티도 그러지 않는다는데 대해서 말일세."
88d 파이돈: 그렇지만 에케크라테스, 소크라테스님께 대해 여러 번 놀라긴 했지만 그때 그분 곁에 있었을 때보다 더 감탄한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그야 그분께서 무엇이건 하실 말씀이 있다는거야 어쩌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어쨌든 제가 그 분에 대해서 무엇보다도 제일 놀란 것은 첫째로 는 이것이었고, 즉 그분께서 그 젊은이들의 논변을 얼마나 기쁘게 호의적으로 그리고 존중하는 자세로 받아들이셨던가 하는 것이 었으며, 다음으로는 그들의 논변들로 해서 우리가 갖게 되었을 느낌을 그 분께서 얼마나 날카롭게 감지하시었던가 하는 것이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우리를 얼마나 훌륭하게 치유해 주셨으며, 마치 패주하는자들을 불러 모아서 논의에 동참해서 함께 고찰하도록 독려하셨다는 것 입니다.
90d "그러니까, 파이돈! 만약에 어떤 참되고 확실한 논변(주장)이 그리고 깨닫게 될 수 있는 논변(주장)이 정작 있다면, 그런데도 누군가가 이와 같은 어떤 논변(주장)들, 즉 같은 것들이면서도 때로는 참된 것들로 여겨지지만 때로는 그렇게 여겨지지 않는 논변들에 접하게 된 탓으로 해서,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서투름 을 탓하지는 않고, 마침내는 괴로움 때문에 탓(aitia)을 선뜻 자신에게서 논변들에 떠넘기고서는 이제는 논변들을 몹시 싫어하며 욕하면서 여생을 보내게 된다면, 그러나 존재하는 것들 (ta onta)의 진리(alētheia)와 이것들에 대한 앎(지식: epistēmē)은 잃게 된다면, 이 사태는 딱한 일일 것이야." 그분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단연코 딱한 일이고 말고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러니, 먼저 이를 조심하도록 하세. 그리고 논변(주장)들에는 확고한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마음(혼) 속으로 들게 하지 말 것이로되, 그보다는 아직은 우리 자신이 확고하지 못한지라, 확고해지도록 과감해야만 하며 힘써야만 한다는 생각이 훨씬 더 들게 하세. 그러니까 자네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후의 온 생애를 위해서, 그러나 내게 있어서는 바로 이 죽음 때문에 말일세. 지금으로서는 나 스스로도 이 문제와 관련해서 지혜를 사랑하는 자세로 임하지 않고 마치 아주 교양 없는 사람들(hoi apaideutoi)처럼 이기기를 좋아하는 자세로 임하고 있어서네."
96a "그러면 내가 말할테니 듣게나. 케베스, 실은 내가 젊었을 때였는데, 나는 사람들이 자연에 관한 탐구(peri physeos historia)로 일컫는 바로 그 지혜(sophia)를 놀라울 만큼이나 열망 했네. 왜냐하면 모든 것의 원인들(aitiai)을 안다는 것이, 즉 무엇으로 해서 각각의 것이 생기며 무엇으로 해서 소멸하고 무엇으로 해서 있는지를 안다는 것이 내게는 대단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지. 또한 처음엔 내가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느라 갈팡질팡하기를 여러 번이나 했네. 열과 냉기가 일종의 부패 과정을 겪게 되면, 어떤 이들이 말했듯, 바로 그때 생물들이 조직화되는가? 그리고 우리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피인가, 공기인가. 아니면 불인가? 또는 이것들 중의 그 어느 것도 아니고 뇌가 듣거나 보거나 냄새를 맡는 감각적 지각들을 제공하여 다시 이 것들에서 기억(mnēme)과 판단(의견: doxa)이 생기는 반면에, 기억과 판단(의견)이 확고함을 얻음으로써, 이런 식으로 앎(인식: epstēme)이 성립하는 것인가? 그리고선 이번에는 이것들의 소멸들에 대해서 그리고 하늘과 땅에서 일어나는 사태들에 대해서 고찰해 보노라니, 마침내는 이런 고찰에는 내 자신이 전혀 소질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에 이르렀네. 이에 대한 증거를 내가 충분히 자네에게 말해 줌세. 적어도 내게는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여겨졌듯 이전에는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서 그때의 이 고찰로 해서 아주 눈이 멀어 버린 지경이 되어 버려서는 이전에는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 조차도, 이를테면 다른 많은 것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무엇으로 해서 사람이 자라는 지에 대해서 조차도 모르게 되어버렸기 때문일세. 그게 먹고 마심으로 해서 라는 것, 이건 누구에게나 명백한 걸로 전에는 내가 생각했으니까. 왜냐하면 음식을 통해서 살에 살이 보태어지고 뼈에 뼈가 보태어지며, 또한 이와 똑같은 이치에 따라 그 밖의 다른 각각의 부분들에 그것들 고유의 것들이 보태어지게 되면 그때에야 작은 덩치인 것이 나중에 큰 것으로 되는데, 이런 식으로 작은 사람도 큰 사람으로 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야. 그때는 내가 이렇게 생각했지. 자네에겐 내가 제대로 생각을 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가?"
97c "그렇지만 언젠가 나는 누군가가 그가 말하는 바로는 아낙사고라스가 지은 것이라는 책의 구절을 읽는 것을 들었는데, 그건 모든 것에 '질서를 부여 하는 것' (ho diakosmon)이며 그것들의 원인으로 되는 것은 결국 정신(지성: nous)이라 주장 하는 것이었네. 바로 이 원인에 대해 나는 반가워했으며 정신(지성)이 모든 것의 원인으로 되는 것이라는 건 어느 면에서는 잘 된 일로 내게는 여겨졌네. 그리고 나는 만일 이게 이렇다면, 질서를 지어주는 정신(지성)은 모든 것에 질서를 지어 주고(kosmein) 각각의 것이 최선의 상태에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게 해준다고 생각했네. 따라서 만일 누군가가 각각의 것과 관련해서 그것이 어떤 식으로 생성되거나 소멸되며 또는 존재하는지 그 원인을 찾아 내고자 한다면, 그는 각각의 것과 관련해서 이를, 즉 그것이 어떤 식으로 있는 것이, 또는 다른 어떤 일을 겪거나(paskhein) 작용을 하는 것(poieim)이 그것에 가장 좋은지(beltiston)를 알아내야만 된다고 말일세. 그러므로, 이 추론(logos)에 따를 진대, 사람으로서는 자기 자신과 관련해서도 그리고 다른 것들과 관련해서도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가장 훌륭한 것(to ariston)과 가장 좋은 것(to beltiston)을 고찰해 마땅하이. 그야 같은 사람이 한결 못한 것(to kheiron)도 알아야만 하는 건 필연적 이지. 왜냐하면 이것들에 대한 앎(epistēmē)은 같은 것이기 때문이네. 바로 이런 것들에 생각이 미치게 되니까. 나는 존재하는 것들(있는 것들: ta onta)에 관련된 원인을 가르쳐 줄 내 마음에 드는 스승, 즉 아낙사고라스를 찾아냈다고 생각하고서 몹시 기뻤다네. 그리고 나는 그가 우선 지구(hē gē)가 평평한지 아니면 둥근지를 내게 말해줄 것이라 생각했으며, 그걸 말해 줄 때에는 더 나은 쪽을 말해주고서는 지구가 그와 같은 것인 것이 왜 더 나은지를 또한 말해주어서, 그 원인(aitia)과 필연성(anankē)을 덧붙여서 설명해 줄 것으로 생각했네. 그리고 혹시 지구가 한가운데에 있다고 그가 말한다면, 그는 지구가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 더 낫다는 데 대해서도 덧붙여 설명해 줄 것으로 생각했네.
99b "그렇지만 내가 행하는 것들을 이것들 때문에 행하며, 또한 그것들을 지성에 의해서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의 선택(tou beltistou hairesis)에 의해서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건, 이건 몹시 그리고 아주 경솔한 주장일게야. 왜냐하면 그건 진짜 원인(to aition)과 그것 없이는 원인이 결코 원인일 수 없는 것이 별개의 것임을 구별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네."
99c "그러나 나는 이 원인을 얻지 못하고 말았기에, 내 자신이 그걸 찾게 되지도 남한테서 배우게 되지도 못했기에, 내가 그 원인의 탐구를 위한 차선의 방법을 어떻게 수행했는지를, 케베스, 자네는 내가 보여주는 걸 자네는 바라는가?"
99d "그러자 그 다음에는, 내가 존재 하는 것들(있는 것들: ta onta)을 고찰하는 데 지친(실패한)터라 마치 일식 상태의 해를 바라보거나 관찰하는 사람들이 겪는 것과 같은 바로 그런 사태를 내가 겪지않도록 조심해야만 된다는 생각이 내게 들었네. 왜냐하면 그들 가운데 혹시 몇몇이라도 물 속이나 또는 그와 같은 어떤 것속에 비친 해의 영상(eikon)을 관찰하지 않을 경우에는, 어쩌면 눈을 버리게 될 테니까. 나 또한 그와 같은 유의 것을 생각하게 되었으니, 육안으로 사물들(pragmata)을 바라보고 각각의 감각(aisthesis)들에 의해서 그것들을 파악하려고 시도하다가 나의 혼(psyche)이 눈 멀어 버리지 않을까 두려웠네. 그래서 내게는 로고스들(logoi)에 의지하여 이것들 속에서 존재하는 것들(있는 것들: ta onta)의 진리(진실: aletheia)를 고찰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네. 아니 그렇다기 보다도, 어쩌면 내가 하고 있는 이 비유는 어느 면에서는 부적절한 것일 게야. 왜냐하면 존재하는 것들(있는 것들)을 로고스들 속에서 고찰하는 사람이, 그것 들을 사례(事例)들 속에서(en ergois) 고찰하는 사람보다도 더 영상들 속에서 고찰하는 것이라고 내가 인정하는 일은 전혀 없을 것이기 때문일세. 그야 어쨌든 나는 이런식으로 시작했네. 나는 그때마다 가장 건실한 것으로 내가 판단하는 것을 원칙(logos)으로 가정하고서(삼고서: hypothemenos), 이와 합치하는 것으로 내게 생각되는 것들은 그것들이 원인에 관련된 것이든 또는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에 관련된 것이든 간에, 나는 참된 것들인 걸로 간주하되, 그렇지 않은 것들은 참된 것들이 아닌 걸로 간주하네. 하지만 나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명확히 자네에게 말해 주고 싶으이. 자네가 아직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서네."
107b "하지만 여보게들! 어쨌든 이 점은 유념하고 있는 게 옳으이. 즉 혼이 과연 죽지 않는 것이라면, 그 보살핌이야말로 비단 우리가 살고 있다(to zen)고 하는 이 기간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때를 위해서 요구되네. 그리고 만약에 누군가가 이를 소홀히 한다면 그 위험은 이제 곧 무서운 것일 것으로 생각되네. 만일 죽음이 실은 모든 것에서의 벗어남(apallage)이라면, 나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천행(天幸)일 것이니, 이들은 죽음으로써 몸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혼과 함께 자신들의 나쁨(나쁜 상태, 사악: kakia)에서도 벗어나게 되는 것이지. 그러나 실은 혼이 죽지 않는 것인 것 같으므로, 혼이 나쁜 것들에서 벗어나는 길이나 구원책으로는, 혼이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훌륭해지고 지혜롭게 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없으이. 왜냐하면 혼이 저승(하데스)으로 가면서 지니고 가는 것으로는 교육(교양: paideia)과 생활방식(trophe)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인데, 이것들이야 말로 그곳으로의 여정의 바로 시작 단계에서부터 망자를 가장 크게 이롭도록 해주거나 해롭게 하는 것들이라고도 하네.
114c 그렇지만 남달리 경건한 생활을 했던 것으로 판단되는 그런 자들일 경우에, 이들이 지상의 이 지역들에서 자유롭게되어, 마치 감옥들에서 풀려나듯 한 자들이니, 이들은 위쪽의 순수한 거처에 이르러, 그곳 땅 위에서 기거하게 된다네. 그러나 바로 이들 중에서도 지혜에 대한 사랑(철학: philosophia)에 의해 충분히 정화된 자들은 향후에 전적으로 몸들이 없이 살게되며, 저들의 것들보다도 한결 더 아름다운 거처들에 이르게 되는데, 이것들에 대해서는 설명하기도 쉽지가 않거니와 지금으로서는 시간도 충분치가 않으이. 하지만 시미아스! 우리가 이야기한 바로 이것들을 위해서, 우리는 인생에서 훌륭함(덕: arete)과 지혜(phronesis)에 관여하도록 진력해야만 하네. 그 상은 훌륭하고 또한 큰 것이기 때문일세."
115b 그분께서 바로 이 말씀을 하시니까 크리톤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좋으이. 소크라테스! 하지만 이 사람들이나 나한테 자네의 아이들과 관련해서 또는 다른 무슨 일과 관련해서 지시할 것은 뭔가? 우리가 자네를 기쁘게 하기 위해, 최대로 자네한테 해 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말 일세." "늘 내가 말하는 바로 그것들 일세, 크리톤! 더 이상 새로울 건 아무 것도 없으이. 자네들이 자네들 자신을 돌본다면, 자네들이 뭘 하든, 자네들은 나를 위해서도 내 가족을 위해서도 그리고 또한 자네들 자신을 위해서도 기쁠 일을 하게 될 걸세. 비록 자네들이 당장 다짐을 하지 않더라도 말일세. 하지만, 만약에 자네들이 자신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래서 마치 발자국을 따라 가듯, 방금 말한 대로 그리고 앞서 말한대로 따라 살고자 하지 않는다면, 비록 자네들이 당장에 여러 번 그리고 단단히 다짐한다 할지라도, 아무 것도 잘 해낼 수가 없을 걸세."
118a 그리하여 어느 사이에 아랫배 주변 부분 가까이가 차져 있었 습니다. 한데 그분께서 얼굴에 덮었던 것을 걷고서 - 그분께서는 이미 덮여 있었으니까요 - 말씀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분께서 하신 마지막 말씀이었습니다. "크리톤! 우리는 아스클레피오스께 닭 한 마리를 빚지고 있네. 갚게나. 소홀히 말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야 그럴 걸세. 한데, 혹시 그 밖에 다른 할 말이 있는지 생각해 보게." 크리톤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크리톤께서 그렇게 물으셨으나, 그분께서는 더는 아무 대답도 아니 하셨고, 조금 지나서 몸을 떨었 습니다. 이윽고 그 사람이 그분을 덮었던 것을 걷으니, 그분께서는 두 눈을 움직이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크리톤께서 보시고서, 입을 다물게 해 드리고 또 두 눈을 감겨 드렸습니다.
에케크라테스! 이것이 우리 동지의 최후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당대에 알게 된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훌륭하였으며, 그 밖에도 가장 지혜로웠으며 가장 올발랐다(정의로웠다)고 우리가 말해야할 그런 분의 최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