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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조선역사...식민사관의 핵심은 조선역사 왜곡

오늘날 진보주의자들의 조선사관이 식민사관과 유사함은 사실

2018-02-22

<진짜 조선역사>
식민사관의 핵심은 조선 역사 왜곡에 있다
역사를 바꿀 수 있는 100권의 책 – 102(부록 편)

김갑수 (작가, 동국대학교 현대소설 전공)

일제의 식민사관과 진보주의의 유물사관에 공통점이 크다면 펄쩍 뛰는 반응을 보일 진보주의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진보주의자들의 조선사관이 식민사관과 유사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1. 조선은 봉건사회였다.
2. 조선 건국은 혁명이 아니라 반란이자 쿠데타였다.
3. 조선 지식인은 대부분이 모화사대주의였다.
4. 중국에 조공을 한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나 다름없었다.
5. 유학, 특히 조선 성리학은 역사 발전을 정체시켰다.
6. 조선은 임진왜란 때 망했어야 할 나라이다.
7. 조선의 정치가들은 허구 한 날 당파싸움을 일삼았다.
8. 세종, 이순신, 실학자들 말고 조선 역사에는 자랑거리가 별로 없다.
9. 조선은 남존여비, 계급차별의 지독한 신분사회였다.
10.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했지만 조선은 근대화를 하지 못해서 망했다.
이상은 조선 역사에 대한 세간의 10가지 통념이다. 《진짜조선역사》(김갑수 저)는 바로 이런 통념들을 교정하는 데 치중한 책이다.



‘불편한 진실’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진실은 불편한 것이라는 전제가 들어 있다. 그런데 정말 진실은 불편한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정작 불편한 것은 ‘편견과 강변’이다. 우리 역사에서 편견과 강변의 대부분은 ‘근대주의’에서 비롯된다.

나는 유럽의 근대사관을 ‘보편적인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인류 역사는 원시공산사회 - 노예제사회 – 봉건사회 - 자본주의사회를 거쳐 공산사회로 나아간다고 했다. 이것을 우리 역사에 최초로 적용시킨 사람이 백남운(白南雲)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8.15 이후 북으로 가서 북조선 역사학계의 원로가 되었다. 백남운은 고조선을 원시공산사회, 삼국시대를 노예제사회, 통일신라 이후부터 조선시대까지를 일률적으로 봉건사회로 규정했으며, 일제 강점기를 ‘이식자본주의’ 시대로 이해했다.

이것이야말로 편견이고 강변 아닌가? 8.15 이후 북의 역사학자들 역시 남처럼 경성제국대학 사학과 출신이 주류였는데, 그들 역시 큰 틀에서 백남운의 마르크스주의 사관을 계승했다.

백남운의 시대 구분은 근시안적이다. 특히 통일신라와 고려와 조선시대 1,200년 이상을 봉건사회로 퉁 쳐버린 것은 편견이자 강변이다. 바로 이러니까 14세기 조선의 위대한 역성혁명을 부정하게 되고 조선 역사를 왜곡, 폄하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진보주의자들도 대체로 이와 비슷한 조선사관을 가지고 있다.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노무현)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의 이 언명을 멋진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노무현의 이 언명에는 다소 무모한 역사 인식이 개입되어 있다. 노무현은 제국주의 침략 이전의 조선 역사를 제국주의 침략이 만들어 낸 근·현대의 저열한 역사와 무작정 일맥상통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일제침공기 역사의 특수성을 놓쳤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많은 독서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그의 독서는 사회과학과 현대사 일부에 치중된 것처럼 보인다. 요컨대 인문학과 근대사 특히 조선 역사에 대한 독서와 사색이 적었던 것이다.

이런 부작용은 한국의 지식인들이 대북 문제가 끼어들면 순식간에 객관성을 잃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도 일제침공기 역사와 조선 역사에 대한 정확한 성찰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무 근거도 없이 이북을 타자화한다. 그러나 일제침공기와 조선의 역사를 제대로 알면 조선(북)이 얼마나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인지를 저절로 체득하게 된다. 조선시대의 진정한 가치를 덮어둔 채 서구의 근대적 가치만 편중되게 중시하니까 ‘반북진보’라는 기형적 지식인이 생산되는 것이다.

근대주의사관은 진보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가 진보사관을 부정하는 이유는 진보사관이 크게 보아 ‘예정설’의 범주에 들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예정설을 수용하지 않는다. 역사란 ‘진보’하는 게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흔히 역사를 움직이는 데에는 몇 가지 힘이 있다고 한다. 도덕, 대중심리, 계급투쟁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누락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연’이다. 역사는 ‘우연과 필연’이 절충 또는 얼크러져서 진행된다. 역사 역시 물리학적 법칙 내에서 진행하는 것이다. 역사가 우연과 필연의 절충이라면 그것은 개연이고 확률일 따름이다.

따라서 나는 인류 역사를 보편화할 수 있는 사관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을 물리학 언어로 바꾸면 ‘역사에는 방정식이 없다’가 된다. 근대주의는 식민사관과 함께 ‘범凡 식민주의’라는 주장은 정당하다. 바로 이것을 정시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주적으로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의 길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다시 강조하거나와 불편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편견과 강변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이다. 지금의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조선 역사를 공부하기 전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제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본다.

- 우리는 조선 사람인가 대한 사람인가? 즉 우리의 정체성은 조선과 대한 중 어느 것과 더 닮아 있는가?

- 대관절 ‘근대’라는 것은 무엇이며 지금 어디에 있는가? 정말 지금의 우리는 그토록 희구하던 근대에 살고 있는 것인가?

- 근대가 있다손 치더라도 조선이 언제 ‘근대’ 하겠다고 원한 적이 있던가?

-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실상 서구 종속화가 아닌가?

- 남들은 근대를 향해 갈 때 조선은 과연 정체나 퇴보를 감수하기만 한 시간이었나?

- 조선 500년의 문명에 근대를 우회하거나 추월할 수 있는 ‘모종의 길(道)’이 숨어 있지는 않았을까?


[조선에 대해 ‘진보’가 더 몽매하다]

독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삼봉의 조선 개국은 삼봉이 꿈꿔왔던 민본세상과는 아주 거리가 먼 민중의 삶 따윈 안중에도 두지 않은 권력자들의 골육상쟁의 아귀다툼뿐인 추악하고 타락한 왕조로 전락되어 버리지 않았나요?”

충격적인 질문이었다. 이 글은 세 가지 점에서 나를 놀라게 했다. 첫째는 그동안 조선을 디스 하는 반응을 왕왕 보긴 했지만, 이토록 격렬한 표현, “권력자들의 골육상쟁의 아귀다툼뿐인 추악하고 타락한 왕조”식으로 조선을 비하한 글은 처음이었다. 둘째는 이 글에 담긴 확신성이었다. 셋째는 이 글을 다신 분이 ‘진보당에서 근무했음’이라고 해놓은 프로필이었다. 다음 글을 읽어 보자.

“조선시대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은 1960~1970년대 학계의 문제의식과 비슷하다. 나도 그 무렵에는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공부한 결과 크게 달라졌다. 나뿐 아니라 지금 국사학계의 전반적인 연구 흐름이 크게 바뀌었다.”

이것은 서울대 국사학과 한영우 명예교수의 말이다. 참고로 한영우 교수는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국사학자이다. 한영우 교수보다 조선을 더욱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오항녕 교수는 저서 <조선의 힘>에서 조선 문명을 위대하게 만든 것들로, 문치주의, 조선왕조실록, 경국대전 등 헌법과 강상, 대동법, 조선 성리학, 선비들의 역사정신 등을 꼽는다.

하버드대학의 투웨이밍 교수는 식민사관에서 공리공론이라고 치부하는 조선의 사단칠정론 논쟁을 “세계 철학사상 빛나는 형이상학 논쟁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언어문화학을 전공한 페스트라이쉬 전 일리노이대 교수는, “선비 정신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도덕적 삶과 학문적 성취에 대한 의지와 행동으로, 사회적 차원에서는 수준 높은 공동체 의식을 유지하면서도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로, 국가적 차원에서는 평화적 국제 질서를 지지하는 태도로 나타난다.”고 했다.

사실 이런 외국인들의 말을 인용하는 것부터 계면쩍은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학벌 없는 비전공자인 나의 말을 좀처럼 신뢰하려 하지 않는다. 내친 김에 내가 생각하는 조선이 위대한 이유 몇 가지를 두서없이 들겠다.

- 조선은 전제왕권, 봉건국가가 아닌 민본중앙집권제였다.
- 통치형태는 군신협의체로서 오늘날의 입헌군주제와 비슷했다.
- 조선의 기록문화 수준은 세계 제1이었다.
- 조선은 중국, 일본에 비해 학자 수가 훨씬 많았다.(비율 면에서)
- 조선은 붕당정치가 활발했을 때 부패가 가장 적었고 붕당이 없어지자 일당독재와 세도정치가 등장했다.
- 조선의 신분제도는 세계적으로 유연했고 신분차별도 적었으며 신분 이동 또한 일본이나 유럽에 비해 훨씬 활발했다.
- 조선의 토지제도는 토지공유제(공개념)를 추구했다.
- 조선의 남존여비 정도는 세계적으로 약했다. 7거지악은 식민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신 3불거(不去)가 있었는데, 여자가 혼인 후 3년 부모상을 치렀거나, 혼인 후 남자의 집안이 부귀해졌거나, 여자가 갈 곳이 없을 경우 이혼이나 별거를 할 수 없었다.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한국은 문화적인 지속성이 단연 눈에 띈다. 한국 문화를 볼 때 지속적인 습관이나 길게 잘 갈 수 있는 멋있는 문화에 많은 매력을 느꼈다.”고 하면서, “아쉬운 점은 바로 한국인들이 일제강점기 교육 때문에 조선왕조나 그전의 전통문화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저자: 김갑수 (2018).
“2018년 설날이다. 신체의 나이가 하나 더 쌓였지만 의식의 나이는 적체되어서는 안 되겠다. 프로필의 겨울옷을 갈아 입혔다. 배경 사진의 눈꽃도 치워 버렸다. 밤하늘의 유성처럼, 추락할 때까지, 끝끝내 불꽃을 가지고 살다가 어느 날 돌처럼 식으면 그만인 인생, 온건을 위한 온건, 신중을 위한 신중, 관용을 위한 관용 따위에 마음 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성숙한 사람이 될 그릇이 아니다. 2018년에는 보다 더 거친 삶을 위한 ‘나의 황야’를 찾아 나서려 한다.” (김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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